번역과 관련된 평범한 이야기 단상

번역가 오경화 씨에 대해... (X-novel의 X대마왕과 놀아보자~에서 트랙백)

저쪽 일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번역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_-; 몇 가지가 생각나는 게 있어서 몇 글자 적습니다.
사실 번역 쪽과 제가 아예 무관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전 보통 번역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의역 위주의 번역. 그리고 직역 위주의 번역.
(당연한 말이지만 의역과 오역은 다른 겁니다. 가끔 오역을 의역이라고 우기시는 분도 계십니다만)

딱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의역 위주의 번역을 보다 선호합니다.
아무리 닮은 구석이 많은 언어를 번역한다고 해도 분명 둘은 전혀 다른 언어거든요.
단순히 내용만 전달하고자 하는 번역이라면 직역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글이 전하고자 하는 느낌까지 정확히 전달하고자 할 때는 직역만으로는 상당한 무리가 따릅니다.
(특히 특정 호칭이나 말장난 같은 부분에서는 굉장히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주석을 백분 활용하는 분도 계시지만 솔직히 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주석이 많아지면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래저래 글이 지저분해지기 마련이거든요.
반대로 아예 이런 부분은 싹 무시하고 직역으로만 일관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합니다.
(사실 이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합니다.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작업 속도도 빠르고)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래도 읽는 사람들의 고개가 연신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해당 외국어 능력이 일정 이상 있고, 해당 국가의 문화적인 이해도가 높은 분이라면
죄다 직역으로만 처리한다 해도 이해하시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항상 그런 분들만 글을 읽는 게 아닌 만큼 직역 처리는 아무래도 망설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 경우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의역을 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문장 순서를 뒤틀거나 내용을 살짝 바꾸는 식의 방법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런 의역이 완벽한 정답이냐고 묻는다면 저도 고개를 젓게 됩니다.
아무리 의역을 한다고 해도 작자가 의도한 바를 100% 전달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직역이 역자 본인의 취향일 수도 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게다가 의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까는 분들이 의외로 무진장 많기도 하고요.
(몇 시간씩 고민해서 의도적으로 의역한 부분을 가지고 원문과 다르다며 까면 나름 슬퍼진답니다)
그 덕분에 번역을 할 때마다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무진장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말이 좀 옆으로 세긴 했는데...
의외로 꽤 많은 분들이 보통 번역 실력을 논할 때 외국어 능력을 최우선으로 따지긴 하지만
전 번역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한국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직역은 번역기로 돌린 뒤에 살짝만 다듬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고...
생소한 표현 같은 건 사전이나 검색의 힘만 빌리면 충분히 해결되니까요.
결국 역자의 실력 척도란 걸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원문을 직역했을 때의 나타나는
한국어와의 괴리감을 얼마나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가에 달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렇다고 역자의 외국어 실력이 아예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외국어를 읽을 줄은 알아야 뭘 번역하던가 말던가 할 테고
당연히 외국어를 잘 하면 잘 할수록 원문이 전하려는 뜻도 쉽게 이해할 테니까요.
다만 그건 역자의 외국어 독해 능력이지 번역으로까지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외국어로 이해한 내용을 외국어로 들려 주려는 게 아닌 이상
그걸 풀어낼 한국어 능력이 꽤나 절실하다는 말이죠.
굳이 따지자면 외국어 능력 30%, 한국어 능력 70% 쯤이랄까요?
번역 제2의 창작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보고요.


어쩌다 보니 사설이 길어지긴 했는데 결론만 딱 잘라 말하자면
번역은 이래저래 꽤나 골치 아픈 작업이란 것 정도...?
뭐, 사실 그런 골치 아픈 부분이 변역의 재미라면 또 재미이긴 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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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우기 2009/02/14 20:11 # 답글

    한국어 능력이라기보단.... 문화 이해도라고 하고 싶군요!!
  • 메사이어 2009/02/14 21:41 #

    문화적 이해도나 배경지식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게 한국어 능력이다...-_-;
    실제로 한국어 능력이 떨어져서 수준 이하인 번역도 많이 봤고 말이지...
    보통 그런 게 부족하면 단어 한두 개 틀리는 걸로 끝난다만... (사실 이것도 심각하지만)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면 문장 전체가 무진장 허술해지거든.
  • H the H 2009/02/14 22:00 # 답글

    읽는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번역으로 100%를 다 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원문이 좀 더 재미있긴 하지만 외국어 능력이 원문을 줄줄 읽을 정도가 안 되니 번역본에 의존하게 되고... 조금 다른 부분들이 아쉽기도 하지만 번역하신 분께서는 얼마나 고민 끝에 이렇게 쓰셨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더라구요. 저도 짧은 기사 같은거 번역해보면 한국어 능력이 모자란 것에 한탄을....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었지만 남에게 보이려니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ㅁ;
  • 메사이어 2009/02/15 09:19 #

    ^^a 뭐... 역자마다 나름의 방침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저것이 일반론이다라고 단정지어 말씀 드리기는 힘든 게 사실입니다.
    문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속도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번역 자체를 훌륭하게 해내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개인 작업이 아닌 이상 마감 잘 지키고 빨리 작업을 끝내 주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거든요.

    다만, 그건 추구하는 목표가 조금씩 다른 데서 오는 차이일 뿐이지...
    모든 역자 분들은 다 자기 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
  • 그냥... 2009/02/14 22:34 # 삭제 답글

    실제 통번역하는 쪽에서들도 의역을 선호합니다.... 직역보다 더 자연스럽고 상황에 더 걸맞게 된다면 그게 '맞는' 번역인 거죠.
  • 메사이어 2009/02/15 09:08 #

    예. ^^;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오경화 씨 관련으로 글을 읽다 보니 의외로 의역한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예전에도 간간히 그런 분들을 뵙긴 했습니다만 역시 조금 놀랐다고 해야 하나요...
    그 어떤 번역이라도 독자 전원을 절대치로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 스키아。 2009/02/15 00:08 # 답글

    번역이라는 건 그 나라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 그래서 나도 직역보다는 의역을 선호하는데..역시 보면 외국어 능력보다는 한국어를 어떻게 구사하는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새 드라마나 애니를 보다보면 이건 이렇게 고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부쩍 늘었는데..
    정말 번역 잘했다는 번역자가 보이는 반면, 기본적인 맞춤법도 틀리는 번역자들도 있어서 참 난감하지.

    ...하지만, 요새는 그냥 그런거 신경 안쓰고 자막 안보고 번역된 책보다 원서보고있음-3-
  • 메사이어 2009/02/15 09:27 #

    약간 뻘소리이긴 한데 나 같은 경우에는 개인 블로그나 체팅 같은 곳에선
    딱히 누가 맞춤법 맞추냐 안 맞추냐 신경 안 쓰는 편이지만...
    (도리어 그거 가지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참 여러 모로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온라인 게임 등등) 같은 곳에서
    맞춤법이 틀린 게 보이면 썩 안 좋게 보이더군.
    비지니스에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조차 안 지키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하긴 요즘은 교수한테 제출하는 리포트에서도 수시로 맞춤법 틀리더라만은...

    아, 그리고 더불어 능력만 되면 역시 원서를 보는 게 최고 -_-)b
    다만 구입하는 게 귀찮아서 문제...
  • 스키아。 2009/02/15 23:02 #

    역시 한국어를 잘 다루기 위해선 틀려도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한 듯.
    나름대로 노력하고는 있는데 글 하나 쓰다보면 어딘가 모호한 표현들이 섞여들어갈 때가 있어서..
    으음, 역시 한국어는 어려워.
  • 메사이어 2009/02/16 03:07 #

    사실 어느 나라 언어고 마냥 쉬운 게 있겠냐만은...
    정말 국어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_-;;
  • mattathias 2009/02/15 13:16 # 답글

    네, 한국어 능력입니다. 한국인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 메사이어 2009/02/15 14:08 #

    ^^; 예. 한국어 능력을 기본 스킬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넘어가시는 분이 많던데
    실제로 이런저런 종류의 역문들을(꼭 출판물이 아니라도) 살펴보면 꼭 그런 게 아니라서 말이죠.
    현재 역자로 일하시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활동을 하시는 분 중에
    외국어 능력은 매우 출중하시지만 정작 한국어 능력 쪽이 다소 부족한 분들도 많이 봐 왔고요.
    (영문 쪽으로 능력이 뛰어나시고 실제로 통번역 쪽 관련으로 강의도 하고 계시는
    젊은 교수님의 역문을 한 번 받아 본 적이 있는데 보고 나니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슬퍼지더군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소 건방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과 한국어를 다룰 줄 아는 것은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
  • mattathias 2009/02/15 14:35 #

    한국어가 기본 능력일 리가 없지요. 제가 보기에는 얼음집을 사용하는 분들의 95% 이상은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인터넷어에, 초성체에, 띄어쓰기도 철자도 엉망인 판국에 한국어로 말하고 쓸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어를 한다고 넘어갈 순 없는 노릇입니다.
  • 메사이어 2009/02/15 14:57 #

    블로깅 맞춤법 이야기가 나오니 저도 살짝 뜨끔하게 되는군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블로깅을 할 때는 어깨랑 눈에 힘 쫙 빼고 글을 적는 편이라
    맞춤법을 포함한 세세한 부분은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서요. ^^a;

    각설하고,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적지 않게 동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묘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번역 잘하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외국어 실력 이상으로 국어 문장 다루는 법을 제대로 안다는 것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그 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시는 분이 별로 없더군요.
    딱히 수치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좀 아쉽기도 합니다.
  • 미스트 2009/02/15 15:26 # 답글

    의역하는건 좋지만 원문의 의미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는 것도 좀....

    번역도 분야마다 중요한 부분이 다르겠지요.
    문학작품 같은 것들은 한국어 능력이 배경지식이나 외국어 능력보다 중요한 면이 있겠지만
    학술서 같은 경우는 외국어 능력과 배경지식 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래도 감동을 주고 쉽게 읽히는 것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편이 더 중요할테니까요.
  • J H Lee 2009/02/15 17:33 #

    학술서는 확실히 의역을 고려할 필요가 없죠.

    설사 문화적으로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그것에 대해 정의를 하고 본론이 전개되니 그냥 그걸 따라 가면 되죠.
  • 메사이어 2009/02/15 17:53 #

    미스트//
    음... ^^;; 첫 번째 말씀은 취향적인 부분이 다소 포함된 거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미묘하군요.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고...

    두 번쨰는... 예. 그렇죠. 번역 마다 요구되는 사항이 조금씩 다른 법입니다. ^^;
    위에도 적어 두긴 했습니다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에 따라 역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번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개인 작업이 아닌 만큼 회사나 단체에서 요구하는 방향성을 어느 정도 따라 줘야지요.

    그쪽 이야기도 쓸까 말까 했는데... 전문 학술서 쪽은 그래서 더 번역이 까다롭긴 합니다.
    번역을 위해서 그 분야를 공부하고 자료를 모은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정말 배경지식이 중요한 서적이면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번역 능력도 뛰어난 분을 찾는 게 베스트지겠지만
    사실 그게 실현될 때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일단 번역자가 최대한 능력껏 번역을 한 이후에
    관련 분야에 대해 잘 아는 분에게 감수를 맡기는 차선책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스트는 역자가 그냥 반쯤 포기하는 심정으로 번역하고 감수자도 배정되지 않는 경우일 테고요.. ( --);;;
  • 메사이어 2009/02/15 17:54 #

    J H Lee//
    ^^a 뭐... 그것도 그렇지만...
    역시 감수해 줄 분이 있으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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