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론(論) #1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3-1. 만화계열 산업의 발달 (1970년대~1980년대)
오타쿠 산업이 일본 만화계열 산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본 만화계열 산업의 역사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다. 일본식 스토리 만화가 생겨난 것은 1950년도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현재 일본 만화(망가) 형식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재패니메이션(에니메) 경우의 역사도 이와 비슷한데 그 어원이 되는 단어들이 등장하기(주1) 시작한 것은 1965년 후반이었고, 본격적으로 애니메란 단어가 사용되며 작품들이 왕성하게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망가가 자리를 잡은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보자면 만화계열 산업의 역사는 대략 30년 정도 밖에 안 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히 망가와 애니메이 확립된 이 1970년대는 이후 관련 산업들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동시에 이러한 방향성은 1990년대가 될 때까지 소소한 변화는 겪지만 그 자체의 큰 변화까지는 생기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4-1. 마(魔)의 시대, 1990년대의 시작
1990년대는 오타쿠 산업에 있어 여러 가지 의미로 마(魔)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오타쿠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이도 하거니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각종 오타쿠 아이콘들이 자리 잡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4-2. 에바의 등장과 오타쿠 산업의 재발견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 1974)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을 시작으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흔히 우주세기로 통하는 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 1979)과 기동전사 Z건담(機動戦士Zガンダム, 1985) 등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그 정점에 이르게 되지만, 이후부터는 산업으로서의 성장세가 차츰 둔화되게 된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이런 애니메 관련 사업의 하향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런 침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바꾼 것이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1995, 이하 에바)'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당시 침체에 빠져 있던 만화계열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고 나아가 기존에 만화계열 산업이 가지고 있던 방향성을 바꾸는 데 큰 작용을 하게 된다.
특히 이런 방향성의 변화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오타쿠 관련 산업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오타쿠를 대상으로 한 산업은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본격적 산업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였다고 봐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 표면화가 가져온 첫 번째 변화는 미디어믹스(メディアミックス-주2-) 모델의 완성이다. 오타쿠들을 중심으로 계속되어 오던 관련 상품의 구매가 하나의 모델로 완성된 것은 에바가 그 기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까지는 관련 상품의 판매가 주로 작품의 인기를 힘입어 상품이 다른 쪽 상품으로 재생산되는 형태(주3)였던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에바 관련 상품들의 획기적 성공으로 기업들도 이러한 구매력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부터는 업계에서도 재생산의 형태가 아니라 처음 기획 단계부터 기타 매체로의 멀티유징을 목표로 하는 작품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변화는 오타쿠 자체를 노린 작품들의 등장이다. 물론 기존에도 오타쿠 성향의 작품들은 다수 있었으나 이것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건 이 시기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애니메 관련 산업이 기존의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오타쿠란 계층 자체를 재선택하고자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심야시간의 재발견이다. 기존의 심야시간의 애니메이션의 주로 비인기작(주4)이나 재방송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후부터는 두 번째에 언급한 바 있는 오타쿠를 겨냥해서 제작한 작품들을 방영하는 시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더불어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오타쿠 산업은 본격적인 기업들의 주목을 받으며 양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된다.

4-3. 그럼에도 오타쿠 문화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오타쿠 관련 산업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4-2 참조) 그것은 오타쿠 문화 자체의 변화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오타쿠 문화가 지극히 짧은 역사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3-1참조) 오타쿠 계열 산업의 역사는 길게 본다 해도 30년 안팍에 불과하다. 즉, 초기 만화계열 오타쿠 문화를 형성하던 1세대 오타쿠 계층이 여전히 생존해 있음을 뜻하고 이들은 아직도 오타쿠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도리어 이러한 문화에 영향을 받은 2세대 오타쿠들이 1세대 오타쿠들과 비슷한 형태를 형성하고자 하거나 1세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하고자 노력하는 성향을 지닌 것을 대형 커뮤니티 등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다.(주5)

4-4. 아키하바라의 탄생
대표적 오타쿠 산업 아이콘 중 하나이자 오타쿠의 성지, 혹은 마계도시라고도 불려지는 아키하바라도 처음부터 오타쿠 산업의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키하바라가 오타쿠 산업의 중심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위와 상동한 1990년대부터이다.
초기의 아키하바라는 상점지대로서 쉽게 말하자면 동대문 정도의 이미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패전 이후 일본이 우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각종 대학들을 신설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 아키하바라 근처에 전자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전기학교(현 동경전기대학)라는 곳이 세워지게 된다. 이 대학의 영향으로 인해 아키하바라에도 기존의 상점들 대신 전자 부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세워지기 시작한다.(주6) 그것은 다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일본의 1차 마이컴 열풍을 거치면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상가들로 대체되기 시작하고 1980년대 패미콤 열풍과 1995년 윈도우95가 발매와 함께 시작된 2차 마이컴 열풍까지 거듭 거치면서 아키하바라는 일본내에서 대형 전문 전자 상가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시기(1995년)부터 일본내 PC 보급률이 급격히 올라가게 됐다는 점이다. PC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이것을 이용하는 컨텐츠, 즉, PC게임 산업부문도 함께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그 대부분은 일반 유저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 아닌 성인 대상의 에로게였다.(이 부분에서 대해서는 4-5에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언급하겠다) 이렇게 에로게 시장이 성장하면서 아키하바라에서도 관련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서게 됐고 차츰 오타쿠들도 모여들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시기까지도 아키하바라의 주류는 여전히 컴퓨터 상가였고 에로게 등을 취급하는 오타쿠 상점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시작된 내수불황으로 이런 상황은 곧장 역전되게 된다. 컴퓨터 판매량의 급격한 감소는 수많은 컴퓨터 관련 상가들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이 빈 자리를 빠르게 꿰어찬 것이 바로 오타쿠 산업 관련 상점들이다. 그리고 비로소 이때부터 아키하바라의 주류는 컴퓨터 상점들에서 오타쿠 산업 관련 상점들로 변화하고 현재 우리가 아는 아키하바라의 모습으로까지 발전된다.

4-5. 에로게의 등장
앞서서도 설명했듯 2차 마이컴 열풍을 거치면서 일본내 컴퓨터 보급률이 급격히 올라가게 됐는데, 그에 비해 관련 컨텐츠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것은 곧 PC게임 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어졌는데 재밌는 것은 실상 발전한 PC게임 산업의 대부분은 에로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크게 주목받고 있던 오타쿠 산업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자체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거듭하여 거대화된 비디오게임 시장 쪽을 따라가기에는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즉, 비디오게임 시장이란 커다란 벽이 에로게라는 틈새 시장의 공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로게 시장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오타쿠 계열 산업(주7)은 물론 기존까지는 오타쿠 산업과 깊은 연관이 없던 부문들까지 오타쿠 산업의 일부로 끌어들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라이트노벨이라 불리는 장르소설인데 이런 라이트노벨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에로게가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심지어 일본 평론계 일부에선 이런 에로게를 일본 문학 일부로 평가하려는 사람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니 일본내에서의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쉬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1)
최초로 '애니메이션'(지금 흔히 쓰이는 애니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다)란 단어가
일본 대중들에게서 등장한 것은 1965년 '소형영화(小型映画)'라는 영상제작 전문지였고,
최초로 애니메와 유사한 장르 타이틀을 달았던 작품은 애니라마(アニメラマ, 애니메 + 드라마의 합성어)이름으로
1969년에 발표된 '천야일야(千夜一夜)'란 작품이었다.
주2)
일본에서 만들어져 쓰이는 일본식 영어 조어로 영어의 Mixed Media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미디어믹스는 원래 광고업계의 용어로,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여러 매체(미디어)를
조합함으로 각 매체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법을 가리키는 말이이었으나
최근에는 하나의 매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CD, TV드라마, 영화, 탤런트,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의
다양한 방면으로 전개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 Wiki백과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주3)
물론 상품 판매에 대한 고려가 이전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로봇 애니메이션은 프라모델화를 고려하여 본래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그것은 미디어믹스 차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스폰서의 요구 문제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후 작품들이 가지는 방향성과 다소의 차이를 가진다.
주4)
다른 시간에 방송되던 작품이라 해도 인기가 없을 경우에는 심야로 이동되는 경우가 많다.
주5)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2세대 오타쿠에서 시작된 이가
1세대 오타쿠의 형태로 완전히 변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주6)
초기 아키하바라의 지명은 아키바 신사(秋葉神社)의 영향으로
아키하노바라, 아키하바라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으나
이후에 JR 아키하바라역이 생기면서 현재 지명인 아키하바라로 정착되게 된다.
주7)
에로게의 성공은 러브히나라는 작품의 성공과 겹쳐지면서
연애물(혹은 러브코미디 장르)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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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에서 오타쿠 산업 전반을 설명하며
글은 마무리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이건 정말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군요.
(솔직히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저도 예상 못했습니다)
일단 글이 길어지니 또 한 번 끊습니다.
모에산업과 총체적인 오타쿠 문화의 한계 정도만 지적할 계획이니
그래도 아마 다음 #3에서는 아마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위 사항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반론과 지적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ps- 이번에도 또 만화 벨리로 보냅니다만... 솔직히 여기로 보내도 될지는 좀 오묘하군요.









덧글
구우사마 2009/02/13 03:02 # 답글
긴 포스팅 수고 하셨수. (ㅡ_ㅡ)/
메사이어 2009/02/13 03:03 #
-_-)/; 작업이 막혀서 어사 님 기다리다 보니...여차저차 해서 쓰게 됐습니다.
쌀소년 2009/02/13 09:56 # 답글
몇몇 군데에 아키하라바 라고 쓴 오타 있뜸
메사이어 2009/02/13 11:32 #
본문 오타인 줄 알고 무진장 찾았는데... 이제 보니 주석에 있는 오타였군.여하튼 수정 =_=)/